도쿄 사이타마 연쇄 유아납치 살해사건)미야자키 츠토무 사형당하다

Posted by Rain Wiz
2019. 12. 20. 14:44 세상이야기/사건들

일본 1988년 8월 22일부터 시작하여

1989년 6월 11일까지 (쇼와 63년~ 헤이세이 원년)

미야자키 츠토무(宮崎 勤(みやざき つとむ)라는 남성이 

어린 소녀 4명을 연속 살인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도쿄 사이타마 연쇄 유아납치 살해사건으로

불리고 있으며, 정확한 사건 명칭은

경찰청 광역 중요지정 제117호 사건

(警察庁広域重要指定第117号事件)


첫 번째 사건은 1988년 8월 22일에 일어난다.

사이타마현 이루마시에서 한 소녀가 납치된다.



소녀는 4세의 콘노 마리

납치한 소녀를 도쿄도 하치오지시 신타마변전소

이츠카이치죠의 숲으로 끌고간 미야자키 츠토무는

오후 6시 소녀를 살해하고, 사후경직으로 굳은

사체를 보며 외설행위를 하며 카메라로 촬영

사체 일부분을 절단한 뒤 보관하였고,

남은 신체는 화장 및 숲에 유기한다.


두 번째 사건 1988년 10월 3일

사이타마현 한노시에 있는 초등학교에 있던

1학년 요시자와 미사미를 납치

첫 번째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츠카이치죠 숲으로

데려간 후 동일한 방법으로 살해한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마사미는 죽기 전 심한 경련을

하였다고 하는데 미야자키 츠토무는 이를 보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스릴 이었다"라고 대답한다.



세 번째 사건 1988년 12월 9일

사이타마현 카와고에에 살고 있던 4살 소녀

난바 에리카가 납치된다. 납치 도중 에리카가

울먹이자 자동차 주변에 난방을 가동



미야자키 츠토무는 '목욕할 시간'이라 말하며

나체 상태로 만들고 강제로 덮쳤다.

이 후에도 에리카가 계속 울자 에리카의 위로

올라가서 에리카를 압박 오후 7시경에 살해된다.

이 후 위의 두 명의 피해자와 같은 숲에 유기한다.



세 번째 사건이 발생하고, 미야자키 츠토무는

1988년 12월 20일 에리카의 집으로 잡지에서

잘라낸 활자로 엽서를 보낸다

내용은'에리카,추위,기침,목,휴식,죽음'

살해 순서를 연상시키는 글이었고,

이 후 방송에서 '딸의 사체라도 찾아 다행'

이라 말하는 것을 듣게 되자 다른 소녀들의

사체도 부모에게 보내려고 계획한다.


1989년 2월 26일 마리의 집에 골판지 상자가 도착

마리의 것으로 추측되는 뼛조각,치아,문서가 들어있었다.

문서에는 '마리 뼈,불태움,감정,증명'


1989년 2월 10일 이마다 유코라는 이름으로

아사히 신문 도쿄 본사에 한 통의 편지가 온다.

보낸 사람은 '이마다 유코' 편지의 내용은

'아이를 유산,그로 인한 스트레스에 의한 범행'

물론 편지를 보낸 사람은 미야자키 츠토무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


1989년 3월 11일 가명인 이마다 유코라는 이름으로

마사미의 집으로 위와 같은 범행 성명을 발송한다.



네 번째 사건은 1989년 6월 6일

위의 사건은 2개월 사이에 일어났지만

네 번째 사건은 6개월이 지난 후 일어나는데

비슷한 시기에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한 동안 잠적했기 때문이다.


도쿄도 고토구 아리아케 테니스 공원에서

5세 소녀 노모토 아야코를 납치,

미야자키 츠토무가 아야코를 유혹하기 위해

껌을 사서 줬는데, 아야코가 손이 이상하다 말하였고,

이에 화가 나서 시노노메 공원에서 약간 떨어진

거리에 차를 주차한 뒤 차내에서 살해한다.


미야자키 츠토무는 사체 유린 장면을 비디오 촬영 및

아야코의 시체를 일부 절단해 먹었고,

피를 비닐 주머니에 넣어 마시는 등 더욱 미쳐간다.


이 후 훼손한 사체를 미야자와 호수 공동묘지 화장실에 유기,

그리고 몇일 뒤인 11일 아야코의 사체가 발견된다.



마지막 사건. 1989년 7월 23일

도쿄도 하치오지시에서 또 다시 소녀를 납치

그곳에 카메라렌즈를 넣으려고 시도하다

소녀의 보호자에게 발각당하고,

소녀의 아버지에게 제압당한 뒤 체포된다.



체포된 후 모든 범죄 행위를 자백하여

8월 10일 네 번째 희생자 아야코의 머리를 발견,

9월  6일 첫 번째 희생자 마리의 손발을 발견

9월 13일 두 번째 희생자 마사미의 사체 발견.


조사 중에 밝혀진 사실으로 소녀를 살해할 때마다

검은 옷을 입은채 집을 어둡게 하고 짚인형을 둔 뒤,

머리에 머리띠를 두르고 양초를 켜서

죽은 할아버지의 부활의식을 벌였고,

그의 집에서 5,763개의 비디오 테이프가 발견되는데

내용물은 호러 및 아동 상업지 등이 있었다.



미야자키 츠토무는 공판이 시작되자

'자신에게 또 다른 인격이 존재한다'는 개소리를 시전하거나

자신이 발언할 차례가 아닐 때 그림을 그리거나

재판에 관심도 없는 불량한 태도를 보인다.


참고로 다중인격의 경우 정신이상자이기 때문에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었기에 이 점을 노렸다고 할 수 있다.


결국 1990년 3월 도쿄지방법원에서 시작되었던

심리 판결까지 무려 7년이 걸렸고,

그 중 절반이 정신감정 검사에 소모된다.


1차 감정결과 '극단적 인격적 편향(인격장애)'

2차 감정결과 '다중인격 및 통합실조증'


법원에서는 1차 감정 결과를 수용

1997년 4월 사형을 선고, 변호인측은 재감정을 요구하나

기각되자 항소한다.  2001년 6월 28일 도쿄고등법원에서 기각,

같은 해 7월 10일 상고를 하지만 2006년 1월 17일

최고재판소에서도 기각을 한다. 변호인 측은 판결정정을 요청.

이마저도 2월 1일에 기각하면서 사형 판결이 확정된다.


2년 뒤 2008년 6월 17일 사형이 집행되는데

그는 '아직 못 본 비디오가 있는데'라는

말을 남기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여담이지만 1994년 미야자키 츠토무의 아버지가

아들의 죄를 책임지겠다면 강가에 투신 자살하는데 

이에 '아버지가 그렇게 되어 속이 시원하다' 발언한다.


사실 일본은 가해자의 가족에게 냉정하다. 방송을 보면

가해자의 가족이 오히려 으름장을 떠는 미친놈도 있다.

하지만 일본은 이런 범죄가 일어나면 가해자의 가족은

장난 전화나 협박 편지, 폭언에 시달린다.


미야자키 츠토무의 신상이 공개되면서, 그의 아버지가 자살하고,

두 여동생이 직장에서 해고 및 파혼 당하였는 것만 봐도

후폭풍이 얼마나 컷는지는 알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