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야 총격전)소년 1명이 수천명과 대치하는 전대미문의 사건

Posted by Rain Wiz
2019. 12. 10. 14:17 세상이야기/사건들

일본 1965년 7월 29일 (쇼와 40년)

18세의 소년 1명과 경찰관 및 구경꾼 수 천명이

대치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한다.

흔히 시부야 총격전이라고 부르는 사건이다.


1965년 7월 29일 도쿄 시부야에서

50km 떨어진 거리의 카나가와현 코자군 자마쵸.

야마토 경찰서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한 소년이 산에서 공기총을 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출동해주세요'라는 내용이었다.


경찰은 소년이라는 말을 듣고 큰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였는지 혼자 산으로 갔고, 소년과 만나게된다.



경찰은 소년을 불렀고,

그 소리를 들은 소년은 경찰을 향해

공기총을 발사, 총탄은 경찰의 가슴에 적중하였고

경찰이 쓰러지자 소년은 경찰에게 다가가 수차례

머리를 총의 개머리판 부분으로 수차례 내리쳐 살해.

경찰의 제복과 권총을 강탈하게 된다.


출동했던 경찰이 돌아오지 않자 동료 경찰관 2명이

현장에 추가로 보내지는데 현장에 있던 소년은

추가로 온 경찰에게 총을 난사, 경찰 한 명이 총을 맞아

부상을 입었고, 다른 경찰관이 허둥거리는 틈을 노려

도망친다. 카나가와현 경찰에 이 소식이 전해졌고,

즉시 긴급수사본부가 차려지나 소년의 행방은 찾지 못한다.



소년의 이름은 카타기리 미사오(片桐操)

미사오는 사건 현장에서 도망치다 지나가던 차를 세워

자신은 경찰관이며 파출소로 태워주길 부탁하였고,

경찰 복장을 한 미사오를 보고 운전자는 승락한다.



그러나 파출소 앞에 도착하자 미사오는 운전자를 위협한다.

그 이유는 이미 카나가와현 경찰들이 경찰차가 아닌

민간 차량을 탄 경찰관이 나타나면 대응하라는 지시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미사오가 인질을 잡고 있어 제압하기가

여의치 않았고, 몇 분간 대치하던 중 지나가던 차량이 

무슨 일인지 궁굼해 정차하자 미사오는 잡고 있던 인질을

경찰관들에게 밀어버리고, 정차한 차의 운전자를 

새로운 인질로 잡은 후 다시 도주극이 시작된다.



미사오는 도쿄 방면으로 이동중이었는데

라디오에서 카나가와현 경찰들이 도쿄 방면에서

검문 중이라는 소식을 듣게 되자 카나가와현 가와사키로

이동 방향을 변경하였고 가와사키에 도착한 미사오는

차에서 내려 총으로 다른 차를 위협하여

또 다시 차를 강탈해서 도주한다.


경찰이 뒤늦게 이 소식을 듣고 카와사카시 인근을

수색하게 되고, 코가네이시 코가네이 공원에서

세번째로 강탈당한 차가 발견하여 300명의

경관이 동원 코가네이 공원을 포위하지만

미사오는 코가네이 공원에 차를 타고 온 사람들을

위협해 차를 강탈, 이미 코가네이 공원을 탈출한 후였다.

(총 4회에 걸쳐 자동차를 강탈하였다)



이번에는 시부야로 향했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구입한

공기총의 구입처가 시부야에 있던 총포상이었기에

그곳에 가서 총탄을 강탈하려는 목적이었다.

경찰은 이 때 코가네이 공원을 수색중이었기에

시부야와 신주쿠 일대에 잠입하기가 쉬웠다.


총포상에 도착하여 미사오가 차에서 내리는 순간

차 안에 인질로 있던 2명이 도망쳤고,

두 사람은 근처 소방서로 가서 신고를 하게 되며,

경찰은 이 소식을 듣고 총포상을 포위한다.



미사오는 총포상에 난입해 안에 있던 직원 3명을

인질로 잡았고, 이 후 미사오와 경찰들의 총격전이

벌어진다. 미사오는 110여발의 공기총탄을 쏘았는데...



이 총포상은 시부야역에서 5분 거리에다

시간이 점심시간이었기에 수천여명의 사람들이

이 사건을 보려 모여들었기 때문에 미사오가 촌

공기총탄에 의해 16명이 부상을 입게 된다.


경찰은 최루탄을 이용해 범인을 검거하기로 하고

오후 7시 20분 최루탄을 발사한다. 

미사오는 최루가스에 괴로워하다 두 명의 여성 인질을 

방패로 가게 밖으로 나오다가 몰래 접근한 

경찰관 두명과 몸싸움을 하게 되고,

한 경찰관을 총으로 쏜 후 도망치려 하였으나

다른 경찰관이 미사오를 붙잡아 체포하게 되며

이로서 시부야 총격전은 끝이 난다.



체포된 카타기리 미사오는 겨우 18세였고,

총기매니아 였다. 어릴 때 직접 총을 만들고 개조했으며,

총을 쏴보고 싶어서 자위대에 입대원서를 넣는가 하면

18세에 총기소유 면허를 취득하나, 고작해야 구입할 수 있는 것은

공기총이었기에 이에 만족하지 못하여 경찰관을 사살하고

권총을 뺏기로 계획한 것으로 추측된다.


미사오는 '현재도 총의 매력에 빠져있으며,

더이상 사람을 죽일 수 없도록 사형시켜 달라'라고 말하였다.


1967년 4월 13일 1심 요코하마 지방법원에서는 무기징역.

1968년 항소심에서 도쿄고등법원에서는 '카타기리 미사오는

교화의 여지가 없다라고 판단 사형을 선고.

1969년 10월 2일 최고재판소에서도 사형을 선고


1972년 7월 21일 미야기 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되면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향년 25세

사건명:少年ライフル魔事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