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사다 사건)파란만장한 삶을 살던 그녀, 바람처럼 사라지다

Posted by Rain Wiz
2019. 12. 6. 07:37 세상이야기/사건들

일본 1936년 5월 18일 (쇼와 11년)

'아베 사다(阿部定)'라는 여성이 내연남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녀는 단순히 분노 같은 이유가 아니라

사랑해서 살해하였다는 점과

아베 사다의 엽기적인 행동에 의해

일본 전역에 상당히 큰 충격을 준 사건이다.


아베 사다는 1905년에 출생

유서깊은 다다미 상점의 막내딸로

태어났으며, 상당히 유복한 집이었다고 한다.



그런 반면 아베 사다는 집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부모와 이야기도 별로 하지 않았다고 알려져있다.


그러나 실제 아베 사다는 어린 신절 모친의 권유로

샤미센이나 토키와즈를 배운 점을 보아

그렇게 까지 공기취급을 당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만 그녀의 부모가 왜 정기교육보다 노래와 춤, 

샤미센을 먼저 가르쳤는지는 알 수가 없다. 


어린 시절 부터 이런 교육을 받은 것이 원인이 되었을까?

소학교 시절부터 선생님에게 여러 차례 주의를 받는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나, 15세에 자퇴.

그리고 당시 아베 사다가 알고 지내던 대학생에게

강간을 당하면서 그녀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내가 처녀가 아니라고 생각하니,

이런 사실을 숨기며 시집가기도 싫고, 사실을 털어 놓고,

시집가기는 더욱 싫다, 게다가 더 이상 시집을 가지 못하는

몸이라 생각되니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었다'


이 후 그녀는 방탕한 삶을 지내며

여러 남자들과 어울렸고 보다 못한 어머니가

아베 사다를 달래보지만 역부족이었고,

참다 못한 그녀의 부친과 오빠가 공모하여

그녀를 창녀로 팔아버린다.



그렇게 팔려간 아베 사다는 전국 곳곳을 전전하며

카페 여급으로 일하거나 부업으로 게이샤 등을

하게 되며 방탕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 상업학교 교장이던 나가미야의 소개로

도쿄 나가노에 있는 '요시다야 음식점'의 종업원으로 취직하면서

이 사건의 피해자인 '이시다 키치조'를 만나게 되며

두 사람은 내연관계가 되었다고 한다.


불륜관계가 되버린 아베 사다와 이시다 키치조

이후 각지를 함께 다니다가 1936년 5월 18일

이시다 키치조는 아베 사다에 의해 목을 2차례 졸려

사망하게 되며, 그가 사망하자 아베 사다는 부엌칼을 이용

이시다 키치조의 성기를 절단하고, 

허벅지에는 '사다, 이시다 키치 단 둘이서'

왼팔에는 자신의 이림은 '사다'를 피로 써넣는다.


#참고로 두 사람의 성적 취향이 정상은 아니었다고 한다.

아베 사다가 칼을 이시다 키치조의 성기에 올리고 위협하자

이시다 키치조는 재미있다고 웃었고, 또 다른 날은

아베 사다가 목을 조르니 이시다 키치조는 쾌감이 더 올라가서

좋다고 이야기 하였다고 한다. 일반인과는 거리가 너무 먼듯하다.



이시다 키치조가 살해당하고 이틀 뒤인 5월 20일

아베 사다는 가명으로 시나가와의 한 여관에서 묵고 있다,

경찰에 의해 체포되는데 체포될 당시 그녀는

'아베 사다를 찾고 있죠? 내가 바로 당신들이 찾는 아베 사다예요'


체포된 후에는 '그 사람을 너무 사랑해서 그의 전부를 원하였지만,

우리는 정식 부부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시다 키치조는 다른 여자를

안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를 죽인다면 어떤 여자도 그를

건드리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그를 죽였다'라고 진술한다.


성기 절단의 이유는 '그의 머리나 몸 중 하나와 함께 하고 싶었고,

늘 그와 함께 하고 싶어서 그것을 가져가고 싶었다'고 진술한다.


아베 사다는 이 후 사디즘과 도착증 등의 정신병 판정을 받으며

법원에서도 단순 치정극임으로 징역 6년이라는 가벼운 처벌을 내린다.

1936년 부터 복역하였고, 1941년 쇼와 덴노 특별사면으로 출소한다.



출소한 뒤에는 과거 아베 사다의 애인이었던 아키바 마사요시의

집에서 살다, 가명으로 결혼도 하나 남편이 그녀의 정체를 알고 이혼한다.


이후 1940년 자신을 도와주던 아키바 마사요시가 사망,

1968년에는 마사요시의 아내인 하나도 사망하는데

이로 인해 아베 사다는 살아갈 의욕을 완전히 잃었다고 한다.



그러다 1970년 아키바 부부가 생전에 아베 사다를 위해

열어준 가게도 아베 사다의 내연남이 돈을 들고 튀어

가게가 망하게 된다. 1971년 1월에는 아베 사다의 단골이던

시마다가 아사쿠사의 한 호텔에서 아베 사다를 만났는데

연극에 출연하게 되었다며 아베 사다는 들떠있었다고 한다.

동년 6월 온천에 다녀오겠다는 쪽지를 남긴채 그녀는 사라진다.


아베 사다는 이후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으나

1987년 부터 이시다 키치조의 묘에 꽃다발이 오지 않았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그쯤에 사망하였지 않나 하는 추측이 있다.



이 사건은 살인범이 미모를 지닌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언론이 아베 사다를 여신 같은 존재로 떠받들어 주면서

당시 최고의 유명인이 되어버렸고,

체포 상황인데도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고 한다.


심지어 그녀의 모습을 보기 위해 그 전날 밤부터

제 1공판소 앞에는 방청하기 위해 사람들이 대기하였으며

그녀의 행동이 로맨틱하다라고 칭송하는 사람까지 생겼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수 많은

영화와 소설이 만들어지게 되기도 하였고,

아베 사다가 직접 연극에 출연하여 연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삶도 잠깐 뿐... 저속한 소설도

만들어지게 되면서 명예회손으로 고소를 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고, 1971년 그녀가 사라지고

아직까지 그녀가 어디서 눈을 감았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일본 사건명:阿部定事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