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현 부녀자 연속살인사건)일본판 화성 연쇄살인사건?

Posted by Rain Wiz
2019. 10. 17. 11:17 세상이야기/사건들

사가현 부녀자 연속살인사건은

일본 사가현 일대에서 1975년~1989년 까지

이어진 연쇄살인사건으로 11세~50세의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이 살해당한 사건이다.


사가현은 물 맑고, 공기가 좋으며 인심도 좋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 사건이 터지면서 치안이 

개판이었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피해자 7명 중 6명이 수요일에 실종되었기 때문에 

수요일의 교살마 사건(水曜日の絞殺魔事件)이라고도 불린다.

(일본 사건명:佐賀女性7人連続殺人事件)



사건에 희생된 피해자들은 대부분

일몰 이 후에 사건을 당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교살되었다.


사건 일지와 함께 사가현 부녀자 연쇄살인사건의

정확한 내용을 알아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 피해자. 야마자키 토미코 (12세)

키타가타마치 1학년 여중생인 토미코는

1975년 8월 27일 수요일 혼자 집을 보던 중

실종된다. 경찰은 단순 가출로 여겨

수사조차 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려 3년이 지난 

1980년 6월 27일 시리이시쵸 스코 초등학교의

수영장 옆에 있는 화장실 정화조에서 발견.

그녀에게서 이상하게 반항의 흔적은 없었다.


두 번째 피해자. 하쿠타케 리츠코 (20세)

1980년 4월 12일 토요일 시리이시쵸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혼자 집을 보다가 실종.

첫 번째 사건과 같은 장소인 6월 24일 

스코 초등학교 북쪽 교사 화장실 정화조에서 발견.

동일하게 반항의 흔적이 없었다.



세 번째 피해자. 이케가미 치즈코 (27세)

1981년 10월 7일 수요일. 시로이시쵸 근방에 있는 

공장에서 조업을 하다 귀가하던 중 실종.

1981년 10월 21일 나카바루쵸 공터에서 시신 발견.

(아직까지 경찰은 3개의 사건을 별개로 취급 중...)


네 번째 피해자. 니시야마 쿠미 (11세)

1982년 2월 17일 수요일. 

키타시게야스쵸에 다니던 초등학교 5학년 쿠미양이 

하교 도중 실종되고, 다음 날인 2월 18일 

인근에 있던 귤밭에서 교살된 체로 발견. 


낌새를 챈 경찰도 있었지만

현경의 공식입장은 별개의 사건 중...



다섯 번째 피해자. 후지세 스미코 (48세)

1987년 7월 8일 수요일. 타케오시의 음식점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던 그녀가 귀가 도중 실종.


여섯 번째 피해자. 나카지마 키요미 (50새)

1988년 12월 7일 수요일. 키타가타마치에서

평범한 주부로 살던 키요미씨가 실종.


일곱 번째 피해자 요시노 타츠요 (37세)

1989년 1월 25일 수요일. 키타가타마치에서

회사원으로 일하던 타츠요씨가 실종.


5~7번째 피해자는 1989년 1월 27일

키타가타쵸의 큰 고개라고 불리우는 산 옆의 도로에서 

어떠한 중년 부부에 의해서 한 번에 발견된다.

3구의 시신 근처에는 범인이 만들어 놓은 듯한

표지판 같은 표식이 있었다고 한다.


경찰은 이제서야 이 사건을 연쇄살인사건이라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된다.



여성이 실종된 후 가족에게 온 편지와 전화?

두 번째 실종자의 부모 앞으로 한 통의 편지와 전화가 온다.

4월 16일에 도착한 편지의 내용은 

"딸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너도 고통을 맛봐라'

라는 내용이었으며, 그 후 몇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전화를 건 사람은 남자였으며

"실종자 찾기 프로그램에 나오지마라'

'리츠코의 사진을 띄우지 마라' 등

수상한 전화가 수차례 걸려온다.


또한 6번 째 피해자 가족에게도 전화가 오는데

상당히 섬찟한 전화 내용이었다.


남편: 여보세요, 나카지마입니다.

남성: 부인을 찾으신 것 같네요.

남편: 네?

남성: 다행입니다.

남편: 어디서 찾았다는 거죠?

남성: 햅쌀이 있는 곳에서요. 

(그 후 잠시 침묵이 이어진다.)

남편: 당신은 누구시죠?

남성: 네가 아는 인간이다.


그리고 전화는 끊긴다. 당시 실종자 집에는 

녹음 시설을 설치 하였지만 

별다른 단서는 얻지 못한다.



이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당시 다른 사건으로

구속되어 있던 26세의 남성이다.


경찰은 2002년 형무소에 수감중이던 남성을

살해 용의자로 지목한다. 그후 열린 공판에서

남성은 사형을 선고 받으나 2005년 4월 10일

사가 지법에서 열린 공판에서 물증 없음과

과도한 조사,유도로 인해 작성된 점을 근거로

남성에게 무죄가 선고되며, 2007년 3월 16일

후쿠오카에서 열린 고등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다.



남성은 사형당할 뻔 하고, 억울하게 5년이나 교도소에

갇혀 있었는데 법원에서 준 보상금은 고작 580만엔...


만약 경찰의 주장대로 이 남성이 정말 범인이라 하더라도 

이미 무죄가 확정되었기 때문에 처벌은 불가능해진다.



이 사건은 무능한 경찰들도 한 몫한다.

얼마나 무능했냐면 7명이 살해됬는데도

연쇄살인범의 존재를 부정하였고,

시체도 부패가 심하게 이루어진 후에 찾거나,

완전히 백골화가 되어서야 찾는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현경이 맡은 광역사건에

대해서는 경찰청이 별 다른 관여를 하지 않는데,

본청에 있던 형사과장까지 내려와서 혼을 낸다. 

쉽게 말해 개망신을 당했다고 보면 된다. 


또한 예전부터 이 무능함은 꾸준했기에

이미 주민들 사이에서는 경찰을 무시하는

태도가 상당했다고 한다.


다만 사가현 주민들에게도 문제는 있었다.

이 곳은 시골마을인데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지역 주민에 대해 함부러 입을 열지 않는

폐쇄적인 태도를 취했기 때문에 

수사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이미 네 번째 사건까지는 공소시효가 만료되었다.

남은 세 건의 사건은 아직 공소시효가 유효하지만

범인을 잡을 수 있을지는 아직까지도 미지수다.

사실 미해결 사건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