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 시대를 평정하고, 고려를 건국한 왕건 '고려의 통일편'

Posted by Rain Wiz
2019. 9. 11. 01:05 일상생활 도움정보/공부

후삼국 시대를 평정하고, 고려를 건국한 왕건 '고려의 건국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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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를 세운 왕건에게는 2개의 고민이 있었다.

첫 번째는 난세의 시대에는 배신이 난무한다. 이러한 것을

어떻게 예방하는가? 그는 3가지 회유책을 생각해 낸다.


정략결혼과 사성 정책, 역분전 정책이다. 

실제 정략결혼으로 인해 왕건은 왕후가 6명, 

부인은 23명이나 되었고, 사성 정책으로 인해

왕씨를 하사받은 사람도 굉장히 많다.

(하지만 이성계에 의해 많은 왕씨가 처형당한다.)



그리고 두 번째 고민은 바로 후삼국 시대의 통일이였다.

실제 왕건이 즉위하자 후백제국과 신라국 두 나라의

사신이 모두 와서 왕건에게 호의를 보냈다.


신라는 내정이 복잡하였고, 후백제도 호시탐탐 

신라를 노리는 탓에 고려까지 적이 되버린다면

자신들의 처지는 바람 앞의 등불이된다.


왕건도 즉위 초반에는 내정이 더 급했기 때문에 

두 나라와 우호관계를 이어 갔지만

후백제가 신라의 대야성을 침략하자, 

신라의 편을 들어주면서 후백제와는 적대관계가 된다.



고려와 후백제의 첫 전투는 조물성에서 시작하는데

양측의 힘이 비슷하여 승부가 나지 않자,

인질을 교환하여 화친을 맺게 된다. 



그러나 고려의 인질인 진호가 의문의 병으로 사망,

견훤은 고려가 약속을 어기고 독살하였다 하여

후백제에 인질로 와있는 왕신을 죽이며

고려와 후백제의 전쟁은 다시 시작된다.



그러나 후백제와의 싸움에서 왕건은 연패.

특히 공산전투에서 신숭겸, 김락 등과 같은

명장들을 잃어버리게 된다.


고려의 연패가 3년이나 계속 되자,

이를 지켜보던 호족들은 왕건을 배신.

후백제에 투항하게 되며 고려는 큰 위기를 맞게 된다.



그러나 안동 호족들의 도움을 받아 

시작된 고창전투에서 후백제를 상대로 크게 이기게 된다.

그로 인해 수많은 성들이 고려에 투항하였다.


후백제는 그 후 수군으로 고려를 공격하지만

수군으로 한 번의 승리를 했을 뿐...

지상과 해상전투에서 연전연패를 하며

점점 나라의 국력이 기울어갔다.



수세에 몰리던 견훤은 각오를 다지며 운주로 다시

병사를 이끌고 가지만 여기서도 대패한다.



그러나 누가 알았겠는가? 고려의 통일과 백제의 멸망은

전쟁이 아니라 집안싸움으로 끝이나게 된다.


견훤이 후계자로 장남인 신검이 아니라

금강에게 왕의 자리를 넘겨주려다 신검의 반란으로

견훤은 금산사에 유폐되어 버린다.



유폐된 견훤은 신검에 대해 분노하여 금산사를 탈출, 

고려에 귀순하게 되며 고려와 후백제의 마지막

전투에 참여하게 된다. 고려군에 있는 견훤을 본 

후백제 군사들은 견훤에게 달려와 항복.


신검은 별다른 싸움도 하지 못한채 

항복을 해야 했고,이렇게 후백제는 멸망하게 되었다.


왕건은 이 전투로 후삼국을 통일하게 되며

고려조는 500년간 이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