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을 살리고, 공산에서 잠들어버린 신숭겸

Posted by Rain Wiz
2019. 9. 9. 01:34 일상생활 도움정보/공부

신숭겸의 출생은 882년~927년이다. 하지만 사망년도는

정확하지만 출생연도는 불확실하다. 그의 원래 이름은

능산이다. 가끔 산능산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것은 삼국사기 '홍술백옴삼능산복사귀'를 잘 못 해석한

결과다. 위의 책은 단순한 책의 제목이 아니라, 공신들의

과거 이름에서 비롯한 책이다. 홍술(홍유),백옥삼(배현경),

능산(신숭겸),홍술(홍유),복사귀(복지겸) 보다 시피 총 5명의

이름이다. 그리고 왕건을 왕으로 만든 1등 공신들 이기도 하다.


그는 원래 궁예의 밑에서 장군으로 활동하여 마군장군의

지위에 있었던 사람이였지만, 궁예의 폭정이 심해지자

왕건을 추대하여 1등 공신에 오르게 된다.




그의 이름이 능산에서 신숭겸으로 변한 이유는

활솜씨와 관련이 있다. 어느 날 왕건과 능산은 함께

사냥을 하러 나가게 되었다. 그러던 중 왕건이 

"저기 날아가는 세 번째 기러기를 맞춰보아라"라고

말하자 능산은 한 번에 맞춰 떨어트렸다.


이에 감탄한 왕건이 그에게 신씨의 성을 하사하게 되며, 

그것이 평산 신씨의 유례가 된다.



그러나 그는 개국공신들 중에서 너무 빠른 죽음을

맞게 된다. 당시 고려와 신라는 동맹국 이었으며,

백제와는 적대관계에 있었다. 사실 당시의 신라는

땅도 얼마 없고, 병사도 변변찮았으며 국정은

기울대로 기울어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



그런 점을 노려 백제의 견훤 왕은 출격하게 되고,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왕건도 직접 병사들을 이끌고, 

공산에서 싸움을 벌이게 된다.



처음 싸울 때는 고려군이 유리한듯 하였으나,

얼마 후 상황을 보니 고려군은 백제군에 포위되어

있는 형국이었다. (백제의 계략이었을 확률이 크다.)


백제의 포위망에 워낙 두터워 뚫지 못하게 되자,

신숭겸은 "나의 외모가 대왕과 비슷하니 내가 대왕의

모습으로 변장하면 대왕은 무사히 탈출하실 것입니다."

라며 왕건의 갑옷을 입은 후 적을 유인하였고,

왕건은 신숭겸 덕분에 겨우 탈출 할 수 있었다.



왕건은 공산에서 후백제군이 물러나자

신숭겸의 시신을 찾았으나, 왕의 갑옷을 입고 있었다.



당연히 공을 차지하고자, 머리와 갑옷을 가져갔을 터...

시신을 찾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다행히 신숭겸은 

왼쪽 발 아래 북두칠성 모양의 사마귀가 있어서

목이 없는 시신을 찾다가 그의 시신을 발견, 수습한다.



그리고 왕건은 그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겨

신숭겸의 머리를 황금으로 만들어 같이 매장하였으며,

왕건의 신후지지(묘)를 신숭겸에게 양보하였다고 한다.


#공산에서 신숭겸을 제외한 8명의 장군이 죽었기

때문에 공산에서 팔공산 이라는 이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