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을 칭하며 왕이 된 궁예.그러나 비참한 최후를 맞는 영웅

Posted by Rain Wiz
2019. 9. 8. 06:17 일상생활 도움정보/공부

궁예 857년~918년, 재위 기간은 901년~918년이다.

그는 진골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장차 나라에 이롭지 못하니,

기르지 않는게 좋다'라는 일관의 예언을 듣게 된다.

결국 '아이를 죽여라'라는 명이 떨어진다. 이 명령을 받은

사람이 이를 안타깝게 여겨 죽이지 못 하고 다락 밑으로

던졌고, 아래에 있던 종이 아이를 받았지만 잘못하여

손가락이 아이의 눈을 찌르게 되어 궁예의 한 쪽 눈은

실명하게 된다. 그리고 종은 숨어서 궁예를 키우게 된다. 

(진골이 아니라 헌안왕 또는 경문왕의 아들이라는 설도 있다.)


궁예는 어느덧 10세가 되었지만 장난만 치며 돌아다녔고,

그런 모습에 한탄한 종이 궁예에거 말을 하게 된다.



'나라에서 버림받은 너를 안타깝게 여겨 오늘까지 

너를 키웠지만 계속 이 같은 행동을 하면 남들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며 그로 인해 너와 내가 화를 입게 되니

이를 어찌하겠느냐' 라는 말을 하며 안타까워 하였다.


이야기를 들은 궁예는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의 곁을

떠나 세달사라는 절로 가게 된다. (후의 흥교사)



궁예가 세달사에 있을 때. 한 가지의 일화가 존재한다.

재를 올리러 가는데 까마귀가 나뭇가지를 궁예의 바릿대에

떨어트렸는데 자세히 보니 왕(王)이라는 글자였다고 한다.



그는 성장하고 세달사를 떠났다. 때는 진성여왕 891년.

당시 조정은 엉망이요. 도적은 들끓고 있는 시대였다.


처음에는 기훤의 휘하에 있었으나, 오만무례한 태도에

이번에는 양길을 찾아간다. 양길은 궁예를 우대해 주었고,

군사를 주어 신라를 공격하게 한다. 절을 나선 지 3년이 지난,

894년 강릉을 거점으로 삼으며,양길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그는 태백산맥을 넘어 철원에 거점을 두게 된다.

이 때 궁예에게 양날의 검이 되는 왕건이라는 부하를 얻게 

되었다. 왕건은 궁예의 영토를 점점 넓혀갔고,

결국에는 개성에 도읍을 짓고, 왕을 칭한다.


이렇게 되자 양길은 불안해진다. 자신이 키웠지만

언제 자신에게 칼을 들이밀지 모르게 되자 궁예를 치기로

한다. 그러나 궁예가 오히려 선수를 치게 되었고,

양길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왕위에 오르고, 얼마 후 자신이 관심법을 

터득했다고 한다. '관심법이란 사람의 마음을 읽는 신통력'

이라고 한다. 그리고 말년으로 흘러갈수록 관심법에

의해 죽어가는 수를 세아리기 어려워 지게 되자,



915년 황후 강씨가 '왕이 옳지 못한 일을 한다'라고

충언을 올렸지만, 궁예는 '네가 다른 사람과 간통을 하다니

어찌된 일이냐?'라고 말한다. 강씨는 부인하지만

궁예는 '내가 신통력으로 보아서 안다'라고 하며

강씨를 죽였고, 얼마 후 자신의 두 아들마저 죽인다.


그리고 그 관심법은 왕건에게도 향했다. 궁예가 왕건을 향하여

'반역을 모의하였지 않느냐'하였다. 이 때 왕건도 목숨을

잃을 뻔 하였지만 왕건을 아끼던 최응이라는 사람이

불복하면 위태롭다고 하자, 왕건은 반역을 꾀했다고 한다.

그러자 궁예는 정직하다며 금은보화를 내려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악행이 계속되자 왕건을 왕으로 세우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결국 왕건을 선두로 한 반역(혁명)이

일어나게 되고, 궁예는 성에서 도망친다.


결국 도망치던 중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보리를 

뜯어 먹다, 화난 백성들이 던진 돌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나라까지 세운 영웅의 너무나 비참한 최후라고 할 수 있다.